#GATE 04
● 성장의 문 · TRUST
● 성장의 문 · TRUST
회사의 숫자가 우리만의 것이기를 멈추는 순간 열립니다.
상장을 준비합니다.
시장이 믿을 숫자가 필요합니다.
[시리즈 리드] 성장하는 회사는 아홉 개의 문 앞에 선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규모의 문, 신뢰의 문, 진화의 문 – ACRAS가 8년의 현장에서 정리한 ‘성장의 9관문’을 한 편씩 해부합니다. 이번 편은 신뢰의 문 – 네 번째 문은 회사의 숫자가 우리만의 것이기를 멈추는 순간 열립니다.
상장을 준비하기로 한 첫 달, 회계법인이 보낸 첫 요청은 재무제표가 아니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결산을 마감한 뒤 시스템 밖에서 만든 조정 항목의 목록이었습니다. 재무팀이 세어 보니 달마다 수십 건이었습니다. 틀린 숫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 숫자들에는 출생 기록이 없었습니다. 어느 거래에서 나왔고, 누가 어떤 근거로 만들었으며, 창고의 실물과 같은 사건에서 태어났는지를 시스템이 말해 주지 못했습니다. 숫자는 있습니다. 재무팀이 매달 만들어 왔습니다. 없는 것은 그 숫자의 출생 기록입니다.
해럴드 제닌(Harold Geneen)은 『매니징(Managing)』(1984)에서 경영자가 사실이라 믿는 것의 대부분이 보고된 사실이거나 가정된 사실이며, 경영은 흔들리지 않는 사실 위에서만 선다고 썼습니다. 상장 심사는 이 구분을 회사 밖에서 강제하는 절차입니다. 어제까지 회사의 숫자는 경영진이 서로 믿어 주면 되는 보고된 사실이었습니다. 상장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그 숫자는 알지 못하는 수천 명의 투자자와 맺는 계약이 되고, 감사인과 거래소는 그 숫자가 흔들리지 않는 사실인지를 심사합니다.
숫자는 있습니다. 재무팀이 매달 만들어 왔습니다. 없는 것은 그 숫자의 출생 기록입니다.
숫자가 흔들리는 이유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에 있습니다
성장기업의 숫자가 흔들리는 것은 재무팀의 태만이 아닙니다. 숫자가 거래에서 나오지 않고 월말의 취합과 대사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물류 시스템은 재고를 알고 회계 시스템은 금액을 아는데, 둘은 다른 시점에 다른 사람이 입력한 별개의 기록이라 월말마다 맞추는 일이 생깁니다. 이렇게 운영하는 회사를 우리는 ‘두 개의 진실을 정기적으로 화해시키는 회사’라고 부릅니다. 화해가 잘 되는 달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고, 그래서 이 구조는 상장을 준비할 때까지 드러나지 않습니다. 감사가 재고 실사에서 시작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 장부의 숫자와 창고의 실물이 같은 거래에서 나왔는지가 신뢰의 첫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이 무거워진 시점이 있습니다. 2018년 개정 외부감사법이 시행되면서 상장기업(일정 규모 이상) 내부회계관리제도 외부검증은 2019년부터 ‘검토’에서 ‘감사’로 단계적으로 강화됐습니다. 검토가 운영실태 보고를 살피는 절차라면, 감사는 재무보고와 관련된 주요 통제가 적절히 설계되고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직접 검증합니다. 상장을 준비하는 회사는 아직 이 감사의 대상이 아니고, 상장 뒤에도 규모에 따라 적용 시점이 다릅니다. 그러나 준비의 기준을 ‘지금 우리에게 적용되는 절차’로 잡는 회사는 두 번 놀랍니다. 상장 심사와 주관사 실사가 이미 통제의 운영 실적을 묻고, 상장 뒤 회사가 커지면 감사 대상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준비의 기준을 검토가 아니라 감사에 둡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COSO(2013)와 같은 내부통제 프레임워크는 통제의 설계와 운영을 판단하는 준거가 되고, 대표이사가 운영실태를 주주총회 등에 보고하도록 보고 책임도 강화됐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회사에게 내부회계관리제도는 문서화의 문제였습니다. 규정이 있고 매뉴얼이 있고 절차가 문서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면 검토는 넘어갔고, 검토의 시대에는 그것이 옳은 준비였습니다. 문서화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규정과 매뉴얼만으로 통제가 실제로 작동했다는 사실까지 입증할 수는 없습니다. 설계를 설명하는 문서와 운영을 입증하는 증거는 다른 것이고, 후자는 시스템이 거래마다 남긴 기록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조직과 시스템까지 정비해야 하는 성장기업에게 우리는 상장 6개월 전이 아니라 2~3년 전부터 이 문을 준비하라고 권합니다. 제도를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 업무에 정착시키는 시간을 확보하자는 뜻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숫자는 결산에서 보정되지 않고, 거래에서 태어납니다
우리의 관점은 이렇습니다. 시장이 믿을 숫자는 결산 때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거래가 기록되는 순간의 구조가 그 숫자를 만듭니다. 그 구조를 우리는 하나의 진실(Single Source of Truth, SSOT)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데이터를 한곳에 모아 둔 창고가 아니라 물동과 재무가 하나의 거래로 묶이는 방식입니다. 창고에서 재고가 움직이는 순간 그 이동이 곧 회계 전표가 되고, 출하 및 청구가 곧 매출 인식의 근거가 되는 것 – 물(物)과 재(財)의 일치입니다. 이 구조에서는 감사인의 질문에 소명이 아니라 조회로 답하게 됩니다.
내부회계관리제도가 요구하는 통제는 세 층으로 읽으면 분명해집니다. 전사 수준 통제는 경영진의 규율이고, 정보기술 일반통제(ITGC)는 시스템의 규율 – 권한, 변경, 데이터 무결성 – 이며, 업무 프로세스 통제는 거래의 규율 – 승인과 검증 – 입니다. 상장 준비의 부담이 몰리는 뒤의 두 층은 시스템 선택으로 대부분 정해집니다. 표준 클라우드 ERP에서 전표 삭제 불가, 전면 이력 기록, 권한과 직무 분리는 추가 개발 항목이 아니라 기본값입니다. 표준 위에서 시작한 회사는 증명 가능한 기본값을 갖고 출발하고, 개별 개발이 쌓인 회사는 통제를 하나씩 설계하고 입증해야 합니다. 클라우드에서는 ITGC의 지형도 달라집니다. 인프라와 기반 소프트웨어의 통제는 SAP가 제3자 인증 보고서로 입증하고, 회사의 몫은 애플리케이션 수준 – 누가 어떤 권한을 갖는가, 무엇이 언제 바뀌었는가, 외부와의 연결은 통제되는가 – 로 좁혀집니다. 우리는 운영 파트너로서 이 몫을 감사 시즌의 벼락치기가 아니라 정기 운영의 일부로 다룹니다. 권한 현황과 변경 이력을 상시 관리하고, 감사 대응에 필요한 증적을 운영 체계 안에서 리포팅하는 방식입니다.
표준 위에 우리가 세우는 것
표준이 규율을 준다면, 그 위에 무엇을 세우는가가 파트너의 일입니다. 우리가 구축 첫날 가장 공들이는 것은 화면이 아니라 계정과목체계, 숫자의 뼈대입니다. 당사의 산업 특화 모델(INNOBLOCK)의 계정 체계는 세 개의 시선을 처음부터 함께 담아 설계됩니다. 공시와 감사에 바로 매핑되는 외부의 시선, 법인이 늘어도 같은 언어로 읽히는 그룹의 시선, 사업부·제품·프로젝트 수익성이 계정 위에서 바로 조회되는 경영의 시선. 상장을 준비하며 계정 체계를 갈아엎는 회사와, 처음부터 공시 가능한 뼈대 위에서 성장해 온 회사의 차이는 실사장에서 드러납니다.
기업 집단이라면 두 가지가 더해집니다. 법인마다 다른 회계 정책과 마스터를 그룹 공통 기준으로 정렬해 연결을 월말의 변환 작업이 아니라 조회로 만드는 통합 기준, 그리고 하나의 거래를 공시 기준과 관리·현지 기준으로 동시에 기록하는 병행원장입니다. 상장 준비 기업에게 병행원장은 사치가 아니라 보험입니다. 감사인이 어떤 기준의 숫자를 요구하든, 변환해 소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기록된 것을 보여 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감사인이 묻는 지점은 산업마다 다릅니다. 외주 생산에 기대는 팹리스에게는 협력사에 나가 있는 재고자산의 실재성이고, 채널이 많은 커머스에게는 마켓별 정산과 매출 인식의 근거입니다. 물과 재가 연결되는 구조가 산업마다 다르게 생겼고, 그 구조를 아는 것이 산업 전문성의 실체입니다.
갈림길은 시스템을 도입하는 날 옵니다
이 구조가 가장 싸게 만들어지는 시점은 시스템을 도입하는 날입니다. 계정의 뼈대, 물재일치의 거래 구조, 통제의 기본값은 그날 정해지고, 그 뒤에 바꾸려면 과거의 숫자까지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나중에 바꾸려면 재구축이 되는 결정들을, 처음에 옳게 잡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늦은 회사에게 문이 닫히는 것은 아닙니다. 상장을 6개월 앞둔 회사도, 심사를 받고 있는 회사도 우리는 만납니다. 그때 달라지는 것은 할 일이 아니라 순서의 밀도입니다. 빠르게 성장할수록, 기본기가 더 중요해집니다. 그리고 감사인이 믿는 숫자와 AI가 믿는 숫자는 같은 숫자입니다 – 거래에서 태어나 이력이 남은 숫자.
표준 위에 토대, 그 위에 신뢰 데이터, 그 위에 AI – 이 순서는 상장 심사가 확인하는 순서이기도 합니다.
네 번째 문을 여는 질문
우리 회사의 위치는 세 가지 질문으로 잴 수 있습니다. 지난달 결산에서 시스템 밖에서 보정된 항목이 몇 개인가. 창고의 재고와 장부의 재고는 같은 거래에서 나오는가, 월말에 맞추는가. 권한 목록과 전표 변경 이력을 지금 당장 출력할 수 있는가.
상장을 2~3년 안에 바라보고 있다면, 이 질문들은 감사인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던져야 합니다. 우리 숫자의 출생 기록이 어디서 끊기는지, 도입 전 진단으로 확인해 보세요.
우리 숫자의 출생 기록은 어디서 끊깁니까. → ERP 도입 진단
참고 자료
· Harold Geneen & Alvin Moscow, Managing, Doubleday, 1984. 국역 『매니징』
·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2018 시행) –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 전환, 대표이사 보고 의무 등.
· COSO, Internal Control – Integrated Framework, 2013. (내부통제 운영평가의 국제 기준)
· Harold Geneen & Alvin Moscow, Managing, Doubleday, 1984. 국역 『매니징』
·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2018 시행) –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 전환, 대표이사 보고 의무 등.
· COSO, Internal Control – Integrated Framework, 2013. (내부통제 운영평가의 국제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