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TE 09
● 성장의 문 · EVOLVE
● 성장의 문 · EVOLVE
마지막 문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의 문입니다.
IT 조직을 둘 여력이 없습니다.
[시리즈 리드] 성장하는 회사는 아홉 개의 문 앞에 선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규모의 문, 신뢰의 문, 진화의 문 – ACRAS가 8년의 현장에서 정리한 ‘성장의 9관문’을 한 편씩 해부합니다. 마지막 문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의 문입니다 – 엔터프라이즈급 시스템을 누가 지키는가.
올해 사업계획서의 마지막 줄에도 ‘IT 인력 1명 충원’이 있습니다. 작년에도 있었습니다. 승인되지 않은 이유는 늘 같습니다 – 그 한 사람이 매일 무엇을 할지 아무도 정확히 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서버는 클라우드에 있고, ERP는 파트너가 보고 있고, 부서마다 쓰는 도구는 각자 관리합니다. 그런데 계정이 몇 개인지, 어느 연동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지난 릴리스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한 자리에서 답할 사람은 없습니다. 채용은 미뤄지고, 시스템은 늘어나고, 그 사이 한 사람의 머릿속이 회사의 유일한 지도가 되어 갑니다.
이 글에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회사는 IT가 없는 회사가 아닙니다. 경영지원 팀장님이 IT를 겸하는 회사부터 IT 팀이 대여섯 명인 회사까지 – 우리가 만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성장기업 대부분이 이 범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여섯 명의 하루는 대개 회사의 제품 쪽에 있습니다. AI 반도체를 설계하는 회사라면 IT 팀은 엔지니어들의 개발 환경과 보안과 계정을 지키는 일로 차 있고, 그것이 옳은 우선순위입니다. 재무·구매·인사가 도는 엔터프라이즈 시스템을 누가 맡는가는 그들의 일이 아니고, 그렇다고 새로 사람을 뽑을 일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 문(Gate)은 ‘IT가 없는 회사’의 문이 아니라, ‘IT는 있지만 엔터프라이즈 시스템을 맡을 형태가 없는 회사’의 문입니다.
이 문(Gate)은 ‘IT가 없는 회사’의 문이 아니라, ‘IT는 있지만 엔터프라이즈 시스템을 맡을 형태가 없는 회사’의 문입니다.
IT 조직의 문제는 인원이 아니라 형태입니다
성장기업이 필요로 하는 IT 역량을 펼쳐 놓으면, 그것은 한 사람의 크기가 아닙니다. 인프라와 보안, ERP의 재무·영업·물류·인사 기능, 시스템 간 연동, 반기마다 도착하는 릴리스 – 전문성이 다섯 갈래 이상인데, 어느 하나도 한 사람의 하루를 채우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 명을 두면 그 한 명이 다섯 가지를 얕게 알아야 하고, 다섯 명을 두면 각자가 놀게 됩니다. 사람을 뽑아도 안 뽑아도 답이 안 나오는 것은 경영진의 결단 부족이 아니라, 필요한 역량의 모양과 고용의 단위가 맞지 않는 구조 때문입니다.
알렉산더 오스터왈더(Alexander Osterwalder)와 동료들은 『최강 기업의 탄생(The Invincible Company)』(2020)에서 기업이 핵심 자원을 소유하지 않고 확보하는 방식을 반복 가능한 사업 모델 패턴으로 정리했습니다. 성장기업에서 가장 희소한 자원은 돈이 아니라 경영진의 주의력이고, 그 주의력은 새 사업을 찾는 탐색(Explore)에 가야 합니다. 엔터프라이즈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돌리는 일은 활용(Exploit)의 무대 뒤 – 잘 돌아가야 하지만 회사가 직접 잘해야 할 이유는 없는 영역입니다.
전산실이 답이던 시절
대기업의 전산실은 온프레미스 시절에 옳은 답이었습니다. 서버가 회사 안에 있었으니 사람도 안에 있어야 했고, 시스템을 아는 사람이 곧 시스템이었습니다. 성장기업의 ‘한 명 IT’도 초기에는 옳았습니다. 시스템이 몇 개 안 될 때는 한 사람이 다 알 수 있었으니까요. 클라우드가 서버를 회사 밖으로 내보낸 지금, 바뀌지 않은 것은 사람의 위치입니다. 서버는 나갔는데 전산실의 모델은 남아서, 회사는 여전히 ‘우리 사람’을 뽑아 시스템을 소유하려 합니다.
소유가 아니라 접속
우리의 관점은 이렇습니다. 성장기업이 확보해야 할 것은 IT 조직이 아니라 IT 역량이고, 역량은 소유할 수도 접속할 수도 있습니다. 소유는 사람과 지식을 회사 안에 두는 것이고, 접속은 그 역량이 본업인 조직에 정해진 방식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는 1989년 월스트리트저널 기고 “Sell the Mailroom”에서 이 구조의 근거를 짚었습니다. 회사의 본업이 아닌 지원 업무는 그 일이 본업인 조직에 맡길 때 비로소 투자와 경력과 생산성이 살아난다는 것 – 안에 두면 그 업무에는 예산도, 승진 경로도, 경영진의 관심도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ERP 운영이 정확히 그런 일입니다. 반기마다 도착하는 릴리스를 읽고 꺼내 쓰는 일(여덟 번째 문)은 한 회사의 IT 담당자에게는 1년에 두 번 오는 낯선 숙제이지만, 여러 회사의 시스템을 함께 운영하는 파트너에게는 매일의 본업입니다. 우리가 2026년 8월 현재 96개월째 운영을 맡고 있는 한 그룹의 계열사들이 그 기간 내내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온 이유도, 지식이 사람이 아니라 운영 체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접속의 조건 – 의존이 되지 않으려면
접속이 의존으로 변하는 순간을 우리는 압니다. 파트너만 아는 것이 늘어나고, 회사는 물어보는 쪽이 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접속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계정과 데이터와 설정의 소유는 회사에 있어야 합니다 – 파트너는 운영하되 소유하지 않습니다. 둘째, 일상의 1차 대응은 회사 안에 남아야 합니다 – 누가 무엇을 쓰는지, 어느 연동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가 문서와 지식 체계로 회사 안에 있어야 합니다. 셋째, 파트너는 교체 가능해야 합니다 – 표준 위에 세운 시스템은 다른 운영사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세 조건이 지켜질 때 접속은 의존이 아니라 선택이 됩니다. 우리가 표준을 고집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여기에 있습니다 – 고객이 우리를 떠날 수 있는 구조여야, 남는 것이 고객의 선택이 되기 때문입니다.
접속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이 세 조건이 지켜질 때 접속은 의존이 아니라 선택이 됩니다.
갈림길은 한 사람이 지도가 되기 전에 옵니다
이 문의 시점은 IT 담당자가 그만두는 날이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앞, 시스템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으로 줄어드는 순간입니다. 그때 형태를 정한 회사는 그 한 사람이 떠나도 아무 일이 없고, 미룬 회사는 그의 퇴사 통보가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시 파악하는 일의 시작이 됩니다. 빠르게 성장할수록, 기본기가 더 중요해집니다. 토대는 한 번 세우고 끝나는 구조물이 아니라, 비즈니스 국면에 따라 살아 움직이며 고도화되는 체계이고 – 그 고도화를 맡을 형태를 미리 정하는 것이 이 문을 여는 결정입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앞으로 더 중요해집니다. 릴리스에 실려 오는 것이 에이전트로 옮겨 가면서, IT 운영의 일은 장애 대응에서 규칙과 데이터와 권한을 관리하는 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 일은 한 사람의 야근보다 여러 회사에서 같은 규칙을 다뤄 본 조직의 반복에 더 맞습니다. AI는 목적지가 아니라, 제대로 된 토대 위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다음 단계입니다 – 그리고 그 토대를 매일 지키는 형태가 접속입니다.
아홉 번째 문을 여는 질문
우리 회사의 위치는 세 가지 질문으로 잴 수 있습니다. 우리 시스템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사람이 회사 안에 몇 명인가 – 한 명이라면 그가 지도입니다. 계정·권한·연동의 목록이 사람이 아니라 문서에 있는가. 지난 릴리스에서 회사가 한 일과 파트너가 한 일을 구분해 말할 수 있는가.
마지막 문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의 문입니다 – IT 담당이 한 명인 회사부터 대여섯 명인 회사까지, 엔터프라이즈급 시스템을 누가 지키는가. IT 조직을 둘 여력이 없다는 말은, 사실 IT 조직의 형태를 아직 정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우리 회사에 맞는 접속의 형태 – 운영·지속 개선을 확인해 보세요.
우리 회사의 IT는 소유입니까, 접속입니까. → 운영·지속 개선
참고 자료
· Alexander Osterwalder, Yves Pigneur, Alan Smith & Frederic Etiemble, The Invincible Company, Wiley, 2020. 국역 『최강 기업의 탄생』
· Peter F. Drucker, “Sell the Mailroom”, The Wall Street Journal, 1989. 재수록: Managing in a Time of Great Change, 1995.
· Alexander Osterwalder, Yves Pigneur, Alan Smith & Frederic Etiemble, The Invincible Company, Wiley, 2020. 국역 『최강 기업의 탄생』
· Peter F. Drucker, “Sell the Mailroom”, The Wall Street Journal, 1989. 재수록: Managing in a Time of Great Change,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