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정’이 ‘계산’이 되기까지
[지난 편에서] 외주 실적의 입력 지점을 하나로 모으자, 담당자 한 사람에게 묶여 있던 정보가 회사의 것이 되고 계획과 실적이 같은 엔진 위에서 돌기 시작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편입니다 – 그 위에서 회계가 달라진 이야기.
첫 편의 질문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 실제로 수익이 납니까?”
이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수익성 보고서를 떠올렸습니다. 논의를 해 나가면서 알게 된 것은, 이 회사가 묻고 있던 것이 그보다 긴 질문이었다는 점입니다. 이 칩은 결국 돈이 됐는가.
칩의 생애는 회계 기간보다 깁니다
팹리스에서 칩 하나는 긴 생애를 삽니다.
먼저 연구개발 프로젝트로 칩을 만듭니다. 그다음 고객별로 POC 프로젝트를 돌려 그 고객의 제품에 맞는지 확인합니다. 이 단계는 유상일 때도 있고 무상일 때도 있습니다.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고객사 제품별로 양산에 들어갑니다. 어떤 제품은 일찍 단종되고, 어떤 제품은 몇 년씩 공급이 이어집니다.
문제는 이 생애의 각 구간이 서로 다른 장부에 기록된다는 것입니다. 연구개발은 비용으로, POC는 프로젝트로, 양산은 제품 원가로. 회계는 기간을 끊어서 결산하는데 칩의 생애는 그 기간들을 가로지릅니다.
그래서 각 분기의 손익은 알 수 있지만, 하나의 칩이 개발부터 단종까지 회사에 무엇을 남겼는지는 어느 장부에도 없습니다. 이 회사가 원한 것이 바로 그 숫자였습니다. 제품 라이프사이클 전체의 ROI, 그리고 제품별 공헌이익.
추정과 계산 사이에는 연결이 있습니다
없던 숫자를 만들려면 흩어진 조각을 사람이 모아야 합니다. 모으는 사람이 유능하면 꽤 그럴듯한 숫자가 나옵니다. 다만 그 숫자는 되짚을 수 없습니다. 어느 거래에서 왔는지 추적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을 추정이라고 부릅니다.
계산은 다릅니다. 데이터가 발생한 자리에서 원가 요소 단위로 쌓이고, 거슬러 올라가면 거래까지 닿습니다. 설명할 수 있는 숫자인가 아닌가 – 차이는 정밀도가 아니라 거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연결은 회계만으로는 만들 수 없습니다. 실행이 이어져 있지 않으면 회계가 받을 데이터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2편의 작업이 3편의 전제였던 것은 그래서입니다.
제품을 축으로 다시 세웠습니다
SAP의 재무회계와 관리회계 구조 위에, 저희가 가지고 있던 팹리스 경영관리 체계(InnoBlock)를 결합했습니다. 핵심은 집계의 축을 기간에서 제품으로 옮긴 것입니다.
하나의 칩에 연구개발 프로젝트의 원가와, 고객별 POC 프로젝트의 비용과 매출과, 양산 실적이 함께 달라붙도록 구조를 잡았습니다. 프로젝트 코드를 기준으로 매출과 비용이 자동으로 묶이고, 표준원가와 실제원가의 차이를 원가 요소 단위에서 읽습니다. 제품에서 제품군으로, 고객으로, 프로젝트로 내려가며 수익성을 추적할 수 있게 됩니다.
공헌이익을 제대로 보려면 전제가 하나 더 필요했습니다. 제품별 변동비가 정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주 단가는 제품마다 다른데 정산이 평균단가로 일괄 처리되고 있었으니, 공헌이익은 계산해도 제품 간 비교가 어려웠습니다. 2편에서 만든 공정별 실적이 여기서 쓰입니다 – 어느 제품이 어느 협력사의 어느 공정을 거쳤는지가 남으니, 외주비가 제품에 실제 단가로 붙습니다.
엑셀에만 있던 개발비와 테스트비, 사급자재 비용도 원가 요소로 원장에 들어왔습니다. 법인카드와 세금계산서 같은 외부 증빙을 받아 전표로 만들고 결재까지 처리하는 영역은 이어카운팅으로, 부가세 신고는 전용 솔루션(VAT)으로 함께 묶었습니다. 원가 정보가 제때 원장에 들어오려면 그 앞단의 증빙 처리가 막혀 있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감과 숫자가 만나는 자리
이런 작업의 결과를 저는 ‘숨겨진 적자의 발견’ 같은 말로 요약하지 않으려 합니다. 경험 많은 경영진의 감은 대체로 정확합니다. 이 회사도 그랬습니다.
다만 라이프사이클 전체를 하나의 숫자로 놓고 보면, 감으로 알던 것과 어긋나는 지점이 생깁니다. 특히 단종 시점이 그렇습니다. 같은 개발비를 들인 칩이라도 양산이 오래 이어진 제품과 일찍 끝난 제품은 ROI가 전혀 다르게 나오는데, 이 차이는 기간 손익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생애를 다 합쳐 봐야 보입니다.
감은 여전히 빠르고 대체로 맞습니다. 다만 감이 틀렸을 때 그것을 알아차릴 방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른 회사입니다.
판단의 근거가 바뀌었습니다
이제 이 회사는 제품 라이프사이클 ROI와 제품별 공헌이익, 고객별 기여도를 놓고 사업 구조를 봅니다. 어떤 POC에 무상으로 들어갈지, 어떤 제품의 공급을 언제까지 이어갈지, 다음 칩에 얼마를 투자할지 – 이런 결정이 설명 가능한 근거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설계를 잘하는 회사가, 자기 제품이 생애 전체에서 무엇을 남기는지 아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연재를 마치며 — 남은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구조
세 편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계획은 있었지만 실행이 보이지 않아 점점 덜 보이게 된 회사가(1편), 실적의 입력 지점을 하나로 모아 실행을 연결했고(2편), 그 위에서 제품의 생애를 하나의 숫자로 읽기 시작했습니다(3편).
이 여정이 남긴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계획이 실행으로, 실행이 실적으로, 실적이 회계와 판단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 시스템은 언젠가 또 바뀌겠지만 이 흐름은 남습니다.
성장이 이미 정해진 미래라면, 정해지지 않은 것은 단 하나입니다 – 그 성장을 감당할 토대가 준비되어 있는가. 이 회사는 설계로 성장할 것이 분명했고, 그래서 그 성장을 감당할 토대를 먼저 만들었습니다. 순서를 지킨 셈입니다.
끝으로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이런 프로젝트에서 저희가 얻는 것은 매출만이 아닙니다. 팹리스라는 산업을 한 겹 더 알게 되고, 다음 고객에게 더 나은 질문을 들고 갈 수 있게 됩니다. 고객의 도약과 Acrasian의 완성은 같은 과정의 두 측면입니다. 이 회사와의 일은 저희에게 그런 과정이었습니다.
우리 제품은 생애 전체에서 무엇을 남겼습니까. → ERP 도입 진단